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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jean pierre 2010. 8.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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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도요타도 보는 '트렌드워칭닷컴' 창업자 레니어 에버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트렌드(trend)의 변덕도 심해진다. 경영자에겐 큰 도전이다. '소비자의 마음'이라는 과녁 한가운데를 못 맞힌다면, 오늘의 챔피언도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전 세계 1200개 기업이 트렌드워칭닷컴(trendwatching.com)이라는 사이트를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02년 설립된 이 회사 유료 회원 가운데는 하이네켄·네슬레·도요타가 있고, 삼성·LG·한화·KCC 등 한국 기업도 20여개 포함돼 있다. 무료 회원은 17만명에 이른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사장은 네덜란드인 레니어 에버스(Reinier Evers·39·사진). 파이낸셜타임스·뉴욕타임스 등이 단골 인용하는 트렌드 전문가이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인 레이체광장에 있는 카페 스타니슬라브스키에서 그를 만났다. 전차 소리와 사람들의 잡담 소리가 더운 대기 중에 가득했고, 길 건너에서는 늙은 악사가 아코디언으로 '케세라세라'를 연주하고 있었다.

흰색 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에버스는 "CEO들이 트렌드를 읽고 싶다면 가끔 이렇게 북적이는 길거리에 나와 사람들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제 파리에서 왔다는 그는 이틀 후면 런던으로 간다고 했다. 그의 블랙베리는 인터뷰 내내 쉴 새 없이 울렸다.

■트렌드의 실마리는 인터넷에 다 있다

―출장은 얼마나 자주 가나?

"적어도 매년 30개 이상 국가를 방문하고 거의 매주 다른 도시에 있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뉴욕·애틀랜타·캐러비아해 주변의 여러 도시, 타이베이·상하이에 갔었다."

―여행이 트렌드를 찾는 비결인가?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건 아니다. 사실 전 세계 소비자는 갈수록 비슷해지고 있다. 서울·타이베이·뉴욕·암스테르담을 보자. 시차가 있고, 형태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소비 트렌드는 거의 비슷하다. 스타벅스가 시작한 커피문화가 퍼져가는 것이 한 예다. 어느 도시에 가도 다른 도시와 놀랄 만큼 확연히 다르거나, 새롭고, 비밀스러운 점을 찾기 어렵다."

그는 "트렌드에 대한 모든 정보와 실마리는 인터넷에 다 있다"면서 "전 세계 500개 이상의 신문·잡지를 주로 인터넷을 통해 늘 모니터한다"고 덧붙였다.

―그럼 왜 여행을 하나?

"도시를 방문하면 늘 도심을 걸어 본다. 인터넷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트렌드를 직접 몸으로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트렌드세터(trendsetter)들을 만나는 일도 여행의 목적이다. 뉴욕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빅 싱커(big thinker)를 많이 만날 수 있어 가장 자주 찾는 도시다. 사실 아시아에서는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그건 언어(영어)문제 때문이 아닐까?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진정한 빅싱커라면 그의 생각은 언어 장벽에 관계없이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사람들이 '중국의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 중국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새로운 사고, 새로운 문제 해결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유럽이나 미국의 가치를 여전히 높게 본다. 많은 사람이 유럽의 게으름과 미국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지금 인류를 이끄는 새로운 사고는 바로 유럽과 미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친환경 제품이 후퇴한다

―최근 주목하는 트렌드는?

"첫째는 '떼지어 어울리기(mass mingling)'이다. 쉽게 말해 온라인 모임이 오프라인으로 확대되는 현상인데, 거의 모든 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2년 전부터 트위터 사용자들이 오프라인 모임을 조직하는 붐이 일었는데, 이런 현상이 서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들었다. 모두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좀비가 될 거라는 10년 전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둘째는 '친환경 제품의 후퇴'다. 모두가 환경에 대해 말하고, 기업들은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나아가 지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신화(myth)에 불과하다. 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어느 나라,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캐나다같이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나라의 소비자조차 환경 이슈 때문에 자신의 소비 행태를 바꾸지 않는다. 결국 '환경을 위해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자'며 기업이 소비자를 겨냥해 내놓는 시도는 불행하게 막을 내릴 것이다.

환경을 위한 진짜 해결책은 정부가 나서서 기준을 정하는 것뿐이다. 호주의 한 마을이 플라스틱에 담긴 생수 판매를 금지시킨 것이나 멕시코시티가 광(光)분해되지 않는 비닐봉지의 사용을 금지시킨 것처럼 말이다."

―많은 경영자들이 트렌드를 파악하는 비결을 궁금해한다.

"호기심과 열린 마음. 이 둘이 없다면 왜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도 사라진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왜 저렇게 행동할까' 의문을 품어야 비로소 트렌드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트렌드는 사람들이 마음 깊숙이 가진 니즈(needs)를 새로운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게으름, 닫힌 마음은 트렌드를 찾는 데 가장 나쁜 태도다."

그는 기자가 들고 있던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S'에 눈길을 주더니 말을 이어갔다.

"자, 이 스마트폰의 경쟁자인 애플을 보자. 애플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핵심은 편의성(usability)과 권한 이양(empowerment)이다. 사람들은 더 쉽게 이메일을 읽고 날씨를 확인하고 싶어했고, 자기 휴대폰에 자기만의 스타일과 기능을 넣고 싶어했다. 애플은 이런 욕구를 잘 짚어냈다."

―삼성이나 노키아의 임원들은 그런 소비자의 요구를 읽지 못했다는 건가?

"노키아나 삼성이 이런 점을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플만큼 철저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CEO들을 만나 대화해보면 많은 사람이 소비자 니즈를 우리 기대만큼 철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50년 전이라면 그런 태도도 괜찮다. 하지만 지금 글로벌 소비자를 상대로 한 세계 시장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으려면 CEO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원점에서 생각해보고, '집어치워. 나한테 최고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라고 외쳐야 한다. 매주가 힘들다면 최소 3개월에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리무진 속에서는 소비자들의 관심에 다가갈 수 없다

―많은 CEO가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얼마 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CEO 모임에 초청받아 갔다. 모임이 끝나고 보니 대부분의 CEO가 기사가 딸린 리무진을 타고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지더라. 리무진 속에서는 실제 소비자들의 관심에 다가갈 수 없다. 분명히 멋진 삶이지만, 그런 자세로는 트렌드를 찾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백만장자지만 다른 CEO들과 달리 마치 록스타처럼 행동하고, 다른 방식으로 듣고, 보고 행동한다. 이런 조언을 하면 우리 클라이언트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웃음)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이 크고 작은 트렌드를 무턱대고 따라갈 수도 없지 않나?

"많은 경영자들이 트렌드를 반짝하고 사라질 유행(fad)이나 겉만 번지르르한 과장 광고 정도로 여긴다. 일시적 유행과 트렌드를 가르는 차이는 소비자의 행동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느냐 여부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CEO들은 사내 회의가 아니라 다른 분야 사람들과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최근에 인상적이었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있다면?

"덴트베티(www.dentbetty.com)라는 미국 업체다. 차가 긁혔거나 고장이 나면 차 사진과 증상을 이 사이트에 올린다. 그러면 그 지역 정비업체들이 '나는 1000달러에 고쳐주겠다'는 식으로 경쟁 입찰을 벌인다. 가격의 투명성이 생기는 동시에 정비업체들이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비록 가격이 10% 정도 더 비싸지만 책임 있는 서비스를 하겠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기도 한다."

―서울을 평가하면?

"2008년 한국을 일주일간 방문했다. 현대적이고, 사람들이 친절하면서도 의욕적이었다. 도쿄에 비해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도시를 꼽자면 상파울루나 타이베이다. 바쁜 비즈니스 시티이고, 거리에 나가면 외국인이 한 눈에 띌 정도로 수가 적어 아직 글로벌 허브에는 못 미친다는 점도 그렇다.

서울이 창의성이나 디자인에 집중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다. 도쿄는 자기 색이 강한 전통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다. 매력인 동시에 외부인에게는 벽이 될 수도 있다. 중국? 유튜브에 접속할 수 없는 이상한(bizarre) 중국 도시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분위기를 찾을 수 있겠나?"


트렌드워칭닷컴은

2002년 설립된 트렌드 조사 전문 회사로 사무실은 영국 런던에 있다. 창업자 레니어 에버스는 원래 음식점 소개 사이트를 운영하다가 다른 회사에 판 뒤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다가 아예 트렌드 조사 회사를 차렸다. 기존 트렌드 업체들은 트렌드 전문가들이 작성한 '비밀 리포트'를 1년에 한두 번 비싼 값을 받고 고객사에 제공했다. 반면 트렌드워칭닷컴은 트렌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매달, 그것도 무료로 배포했다. 대신 유료 독자에게는 차별화된 서비스(데이터베이스 접근권, 심층 리포트)를 제공한다.

IT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21세기 비즈니스 모델로 치켜세운 '프리미엄 모델'(Freemium=Free+Premium)을 일찌감치 실천해 온 셈이다. 95%의 범용 서비스는 공짜로 제공하되 나머지 5%의 차별화되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소수에게 팔아 수지를 맞추는 방식이다. 정보 수집을 위해 세계 170개국에 800명의 '스포터(spotter)'라는 통신원을 두고 실제 사례를 수집한다. 정식 직원은 8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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