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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석원 약사회 명예회장 (2회 약업대상 약사부문 수상자)

jean pierre 2021. 5. 6.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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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석원 약사회 명예회장 (2회 약업대상 약사부문 수상자)

 

"약사회를 위해 바친 40여년,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

한약분쟁. 의약분업 거치며 약사직능 향상에 최선

-약업대상 약사부문 2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소감을 부탁드린다.

 

▲약업대상을 김대업 회장이 제정을 했는데, 내가 회장을 할 때 미처 생각 못한 부분이었다. 그동안 항상 상을 수여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런 큰 상은 처음 타 봐서 익숙하지 않다.

나보다 약사회에서 헌신하고 노력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텐 데, 다른 분들이 먼저 상을 받으셨어야하지만 내가 받는다하니 그분들께 죄송스럽기도 하고, 한편 영광스럽기도 하다.

이런 기회는 김대업 약사회장이나 제약협회. 유통협회 회장님들의 관계도 있겠지만, 그들이 같이 의논해서 결정한 것이니 감사할 다름이다.

앞으로 약사회 발전을 위하고, 약사직능의 권익이 신장되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며 살아갈 것이다.

 

-약사회와 약사로서 삶을 같이 해 오신 것 같은데...

 

▲1981년 서대문구약사회부터 시작해 약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지 41년 정도 됐다. 한 번도 임원자리를 놓지 않고 대한약사회까지 왔다.

약사회 분회 사상 3대 연임을 한 것은 서대문이 처음이었으며, 여기서 서울시약사회 부회장으로 갔다. 서대문구분회장을 하며 서울시 부회장을 하고, 한약파동이 95년에 일어나며 서울시 회장을 하던 정병표 회장과 대한약사회장이 직을 내려놓으며, 그때 임시 회장을 하고, 잔여임기 회장을 1년을 했다. 이후 96년에 서울시약사회장 3년을 했다.

 

-한약 파동 때 약사회 상황이 어땠는지 간략하게 말씀 해 달라.

 

▲한약파동 때 상황을 보면 약사회 역사상 2000년도 전에는 한약파동이 약사회가 투쟁의 역사였다. 그게 바로 약사직능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할 정도로 강했다. 집행부 모두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면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의약분업이후 첫 회장에 당선됐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회장임기동안 어땠는지..

 

▲2000년에 분업이 시작되며 김 희중 회장이 2000년 12월까지 임기를 진행했다. 2000년 7월에 부회장 역임, 의약분업의 기틀을 함께 놓으며 혼란의 시기를 지나왔다.

2001년 2월부터의 투쟁은 의약분업에 대한 투쟁이었다. 주사제가 약국에 남는지, 의원에 가는지가 이슈였고, 회장이 되는 날부터 농성하고 데모했다.

2001년에 약사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당선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전국지부장들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2001년 5월에 김원기 복지부 장관이 취임했고, 역사적인 상황이 의약분업이 존립하느냐 망가지느냐의 기로였다.

당시 청와대 복지수석은 이태복 수석이었다. 그가 후에 복지부 장관을 했는데, 이들이 무엇을 가지고 논의했냐면 3세 이하 65세 이상 의약분업 제외를 2001년 5월에 발표하려했다.

그때 복지부에 약사회 임원들이 찾아가고 부회장들은 청와대를 찾아가 투쟁했다. 김원기 장관이 의약분업의 개정안 발표를 막았다. 이것이 회원들의 직능을 지켜가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의약분업 연착륙을 위해 큰 역할을 하신 것 같다. 이후에도 약사회 주요 회무를 계속 보셨는데..

 

▲2000년 이후는 약사 직능이 안정적으로 들어서고 약권 수호를 위하고, 약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시기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원희목 회장이 2004년에 회장을 하고, 그 때 3대를 거쳐 의장을 했다.

약사회에서 자리를 놓지 못하고 계속 회무를 봤다. 약사회 역사상 유일무이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인 과정이 있고, 약사공론 주간도 했었다. 약업대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

 

-김대업 회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신 것 같은데...

 

▲우리가 약사사회에 잘 알지만 동문회 파벌이 상당하다. 내가 회장을 할 때 김 대업 회장을 상근 임원으로 두고 있었다. 그때 일을 같이 하면서, 정말 약사회만을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임을 봤다.

내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약사 사회를 위해 누가 열심히 일하는가를 본 것이지, 약사 직능에서는 학벌이 중요치 않다. 김 대업 회장이 자기 몸을 던져 일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사업도 하시고, 약국도 하시고 일이 많으셨을 텐 데 약사회 회무를 오래 봐 오셨다. 후회되는 것들은?

 

▲내가 약사회에 왜 발을 들였을까(웃음) 약사회 일을 시작하면 지나고 보면 약국을 소홀히 할 수 밖 에 없는 상황이다. 서대문 분회 부회장 일 때 도 분회장 일정이 있으면 약국을 닫고 움직였다.

 

약국의 문을 닫고 움직이며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사업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약국을 열심히 해서 빌딩도 좀 세우고, 여유 있게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보면 나랑 비슷한 시기에 약국을 한 사람들을 보면 다들 돈 많이 벌었다. 그래서 집 사람도 고생을 많이 했다.

 

반대로 자랑스러운 것은 약사 사회에 나오면 누구보다 떳떳했으며, 부끄러운 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약사회장 할 때도 재무 담당자에게 도장을 맡기고 돈과 관계없이, 떳떳하게 회무를 했다는 점에서 자신한다.

 

-기억 속에는 여러 임원 중에서 대한 약사회장의 이미지가 강한데, 의약분업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평가를 한다면?

 

▲의약분업 시작 때만 하더라도 찬반이 많이 엇갈렸다.

 

그래도 지금 와서 보면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약사직능이 그만큼 올라섰다고 평가한다. 아주 성공적이진 않아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개선하면 된다. 약사사회를 위해선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원들이 불평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예전 시절이야기가 아닌 체계적인 의약 관계, 국민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약사 직능이 국민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분업이라는 제도를 잘 보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워하는 회원들에게 희망메시지를 던진다면?

 

▲코로나 때문에 많이들 어려워한다.

 

그래도 이 과정을 거치면 좋은 시절이 오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직능수호를 해서 함께 했으면 한다. 대한약사회 회원들 덕분에 이 상을 탈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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