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의약품유통/▷약계사람들

성분이 같다고 약효도 같지 않다

jean pierre 2008. 2.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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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동성통과했다고 약효가 같지는 않다
             같은 성분이어도 약효는 달라..국산 카피약 너무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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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의약품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이 난항이다. 상품명 대신 성분명으로 약을 처방하라는 것은 값이 싼 복제약(카피약)을 더 많이 사용하리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환자와 의료계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환자단체와 의료계는 정부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에 반대했다. 정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성분이 같으니 약효도 같다’는 논리에서다.

과연 그럴까? 먹는 약이 약효를 내려면 여러 단계를 거친다. 위장관에서 잘게 부숴지고 녹아야 몸 안에 흡수될 수 있다. 이어 원하는 조직까지 도달해야 하고, 약효를 내는 고유한 특성이 같아야 한다. 이 단계 중 어느 하나라도 틀어지면, 성분이 같아도 약효는 달라진다.

복제약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 시험ㆍ제약사가 오리지널약을 복제한 약을 만들어 오리지널약과 흡수되는 정도가 유사한지 여부를 따지는 것)을 통해 허가받는다.

약효 발현 단계 중 중간에 해당하는 ‘흡수’정도의 유사성을 간접 지표인 혈중 농도로 비교한 게 생동성이다. 혈중 농도로 추정한 약물 흡수 정도가 같으면 복제약의 약효가 오리지널약과 같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항고혈압제 항암제 항생제처럼 약물 흡수 정도는 물론 시간에 따른 흡수 변화 양상이 약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때나, 항우울제처럼 혈중 농도와 약효의 연관성이 잘 확립돼 있지 않을 때는 다를 수 있다. 또, 약효 성분은 같더라도 첨가제가 다르면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현재의 생동성 시험 평가는 집단의 ‘평균’에만 초점을 둔다. 따라서 혈중 농도가 50~150에 넓게 분포해 용량 조절에 주의가 더 필요한 복제약도 농도가 90~110으로 잘 조절되는 오리지널약과 생물학적으로 동등하다고 간주한다. 평균이 100으로 같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생동성을 입증해도 같은 환자에서 복제약으로 바꿀 때 흡수가 비슷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예를 들어 복제약 사용 전후에 한 환자의 혈중 농도가 100에서 200으로 두 배 증가했고, 다른 환자는 200에서 100으로 절반이 감소했다고 해도 이 복제약이 오리지널약과 생동성이 ‘같다’고 한다. 사용 전후의 농도 평균이 100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약을 성분명 처방이랍시고 임상 훈련을 받지 않은 비의료인이 임의로 교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성분이 같은 복제약이 수십 개에 달한다.

‘위탁생동’(제품명만 달리하여 위탁 제조하는 경우 제약사가 한 복제약의 생동성 시험을 다른 기관에 맡기는 것)이니 ‘공동생동’(한 복제약의 생동성 시험을 수십개 회사가 공동으로 하는 것)이니 하면서 붕어빵 찍어내듯 복제약을 허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약들 ‘사이’의 생동성은 아예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허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동성 입증으로 복제약을 허가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값싸고 품질이 우수한 복제약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복제약값은 너무 비싸다. 그러니 굳이 성분명으로 약을 구매해야 할 경제적 동기 부여가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많은 의사들은 복제약의 약효가 떨어지는 임상 경험을 갖고 있다.

그동안 생동성 시험은 정부의 엄정한 감독에서 비켜나 있었다. 이 문제가 극명히 드러난 것이 바로 생동성 자료 조작 사건이었다. 복제약의 효과에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던 환자와 의료계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유사한 사태에 직면했던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1989년 수준 미달이나 조작 자료가 제출된 복제약을 뇌물을 받고 불법 허가해준 것이 밝혀져 FDA는 온갖 망신을 당했다.

이후 FDA는 복제약의 생산 공정에 쓰이는 기계 하나까지도 일일이 현장 확인한다. 복제약 허가 신청서의 절반 가량이 30일 이내에 이런저런 문제점이 발견돼 반송될 정도로 엄격한 심사 절차를 도입한 것도 FDA가 취한 사후 조치 중 하나다.

우리 정부도 당장 복제약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허가관리 시스템을 수립해 환자와 의료계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 다음에 ‘성분이 같으니 약효도 같다’는 주장을 해도 늦지 않다. 환자의 건강은 보험재정 절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부 관료가 마음대로 휘둘러도 좋은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이형기 UC샌프란스시코 약대 교수ㆍ의약품개발과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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